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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세(柳志世*朗惠)TISTORY

挽 柳府尹 忠立 본문

文陽府院君 柳自新&蓬原府夫人 東萊鄭氏(鄭楊貞)(20世)

挽 柳府尹 忠立

감사공 2023. 3. 30. 09:28

(李廷龜)先生集卷之十五

 

廢逐錄 下

挽柳府尹 忠立

 

先府高名屈短期天將積慶二郞遺爭瞻聳壑昂霄氣未睹垂紳搢笏時宦只十年輿望宿哭今三世我生遲曾求雙柏堂中詠忍把玆詩作挽詞

 

柳之父希鏗是余友早有名短折柳之大父文陽公歿十餘年柳又亡故五六句及之雙柏堂柳新構也

 

1.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의 한사람인 이정구(李廷龜 1564~1635)1616(丙辰)년 명나라에 주청사로 갈 때 시교생 류충립이 염려하며 시를 올린 것을 보아도 스승과 제자 사이 16(1582-1564=16)의 차이로 보는 것이 타당성이 있어 보여져 간접적으로 보완이 되어져 보입니다.

 

여기에는 삼촌인 류희량(1575~1628)의 근묵 실존하고 있음.

 

2. 1623년 인조반정과 1628년 친형 류효립(1579~1628) 모반사건을 거치면서 당시 삼촌들인 류희분. 류희발. 류희량. 형 류효립. 아들 류양선 등 역사 기록상으로 1~2차로 멸문지화 되어 모두 처벌을 받았으나 류충립의 이름은 그 어느 곳에도 없으며 형 류효립의 2柳養善을 양자로 들인 것 등으로 보아 틀림없이 1623년 인조반정의 험한 집안 꼴을 보기 전에 병약으로 자연사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3. 月沙 이정구(李廷龜 1564~1635)선생집 권지15"挽柳府尹 忠立"으로 보아도 스승인 이정구보다 앞서 한 것으로 나타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