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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세(柳志世*朗惠)TISTORY
검서관 유득공 부자의 필운대 풍월 柳得恭(28世) 柳希聃의 後孫 2019-06-27 08:19:38 검서관 柳得恭 부자의 필운대 풍월 목차 접기 흐드러지게 핀 살구꽃을 노래한 유득공 다산과 연암에서, 정조대왕까지도 노래한 필운대 필운대 풍류객들의 꽃구경 산문 조선시대의 체제와 제도를 명문화한 『경국대전(經國大典)』 「한품서용(限品敍用)」조에 의하면 “문무관 2품 이상인 관원의 양첩 자손은 정3품까지의 관직에 허용한다.” 하였으며, “7품 이하의 관원과 관직이 없는 자의 양첩 자손은 정5품까지의 관직에 한정한다.” 하였다. 양첩 자손은 그나마 한정된 벼슬에라도 오를 기회가 있었지만, 천첩 자손은 벼슬할 기회가 없었다. 뛰어난 서얼 지식인이 늘어나자, 정조는 서얼금고법에 해당되지 않도록 검서관(檢書官)이라는..
류 득 공 (柳 得 恭) 文化柳氏 歷史 & 現代 人物 2019-07-01 13:10:43 자 혜보(惠甫). 호 냉재(冷齋). 문양부원군 자신(文陽府院君 自新)의 2자 판결사 희당(判決事 希聃)의 7대손이요, 규원 춘(養園 瑃)의 아들로 영조(英祖) 24년 戊辰 11월 5일 한양(漢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재주로 이름이 있더니 일찌기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을 스승으로 섬기고 실학(寶學)을 전공하여 실사구시(寶事求是)를 힘쓰는 동시에 시부(詩賦)에 있어서는 구격(舊格)을 벗어나 독특한 경지를 이루었다. 50년 甲午(1774)에 생원(生員)에 급제하고, 정조(正祖) 3년 己亥(1779)에 음사(蔭仕)로 규장각검서(奎章閣檢書)에 선발되었다. 그로부터 외직으로 포천(抱川) ․ 제천(堤川)의 현감을 거쳐 ..

유득공시의도(柳得恭詩意圖) 柳得恭(28世) 柳希聃의 後孫 2019-07-01 22:28:13 유득공시의도(柳得恭詩意圖) 유득공시의도(柳得恭詩意圖) 앞 쪽에 몇 그루 나무와 초가가 있으며, 너머에는 아무런 경물을 배치하지 않은 공간으로 남겨 놓았다. 이런 원경의 생략과 전경의 초가 주변은 마치 김정희의 「세한도」가 연상된다. 이 그림은 주학년(朱鶴年)이 김정희와의 작별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의 명사(名士)인 유득공(柳得恭)의 시를 그림으로 표현하여 선사한 것으로, 북학파와 청조 문인들 간의 한묵교류를 되새기게 해준다. 현재 이 그림의 소재는 알 수 없다. 1810년에 그린 것이다. 참고 : 김창재님의 블로그에서 옮겨왔습니다. 이해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