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이런 저런 역사 통합 (85)
류지세(柳志世*朗惠)TISTORY
扈聖原從功臣錄券 朝鮮王朝時代 聯關 자료해설 2019-05-27 13:54:05 권수에 ‘扈聖原從功臣錄券’이란 녹권명이 기재되어 있으며, 다음의 제2행에는 수급자인 ‘前參奉 成櫟’이 보이고 있으며, 녹권의 형식상 6행에 걸쳐 ‘施命之寶’라는 어보(御寶)가 분명하게 날인되어 있다. 그리고 제3행 이하에는 왕명의 전지(傳旨)를 봉명한 만력 33년의 일자와 봉명자인 도승지 신흠(申欽), 그리고 왕명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전지의 내용 다음에는 1등 공신으로부터 3등 공신까지의 명단이 차례로 기재되어 있는데, 각 등급 사이의 구분은 음각한 묵개자(墨蓋子)형식의 매목(埋木)으로 구분되어 있다. 3등 공신의 명단에 이어 각 등급에 따른 포상내용이 규정되어 있다. 말미에는 호성공신도감의 당상(堂上), 낭청(郎廳), ..
퇴계 어머니는 춘천 출신 朝鮮王朝時代 聯關 자료해설 2019-05-27 13:51:58 "퇴계 어머니는 춘천 출신" '정경부인 박씨' 본관 춘천… '퇴계동' 지명 뒷받침 "율곡 이이(李珥) 뒤에 강릉의 신사임당이 있었다면, 퇴계 이황(李滉)에겐 춘천 출신 어머니 '정경부인 박씨'가 있었다."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수필가 이정배 씨는 최근 발간된 '춘천문화유산답사기, 문암서원 편'에서 춘천과 퇴계 이황의 인연에 대해 사료와 전해지는 이야기를 통해 밝혀 놓고 있다. 이씨는 "춘천에 본관을 두고 있는 유일한 성씨인 춘천 박씨부인은 이황의 어머니로, 그가 조선 성리학의 대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현재 춘천시에 퇴계동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는 것은 이러한 인연 때문이라는 것을 뒷받침해주..

이순신 선무공신(1~3 등 18인) 족자 *참고사항:1~3 등 총18인의 교서는 족자와 철권으로 각각 다르게 일부 발굴되어 있음 이순신 선무공신(1~3 등 18인) 족자 李光岳 宣武功臣敎書 文化柳氏 聯關 諸行事 2019-05-27 13:42:46 문흥군(류사원)철권 표지 문흥군(류사원)철권 1면 문흥군(류사원)철권 3면 문흥군(류사원)철권 4면 문흥군(류사원)철권 5면 문흥군(류사원)철권 6면 문흥군(류사원)철권 7면 문흥군(류사원)철권 8면 문흥군(류사원)철권 9면 문흥군(류사원)철권 10면 문흥군(류사원)철권 해석문 권응수 교서해설 文化柳氏 聯關 諸行事 2019-05-30 16:25:24 종 목 보물 제668-2호 명 칭 선무공신교서(宣武功臣敎書) 분 류 기록 유산 / 문서류/ 국왕문서/ 교령류 수량..
김정호 大東輿地圖 제작 朝鮮王朝時代 聯關 자료해설 2019-05-27 13:19:36 김정호 大東輿地圖 제작 1861년(철종 12)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으로 된 한국지도. 축척은 약 1/16만. 남북 22층으로 되어 있고, 각층은 세로 30.2㎝, 가로 20.1㎝ 크기의 8폭으로 접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각 층을 책의 크기로 접은 판의 크기는 실제거리가 동서 80리, 남북 120리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이 22층을 순서대로 접합하면 세로 7m, 가로 3m에 달하는 커다란 1장의 한국전도가 되도록 고안되어 있다. 지도 첫머리인 제1층에는 좌표와 지도표(地圖標), 지도유설(地圖類說), 서울의 도성도(都城圖),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등이 실려 있다. 《대동여지도》의 특징은 첫째..
金天澤의 靑丘永言 朝鮮王朝時代 聯關 자료해설 2019-05-27 13:16:04 金天澤의 靑丘永言 영조 4년 김천택(金天澤)이 엮은 고 시조집. 고려 말엽부터 편찬 당시까지의 여러 시 모은 것으로 현존하는 가집(歌集) 중 편찬연대가 가장 오래되고 내용이 방대하다. 《해동가요(海東歌謠)》 《가곡원류(歌曲源流)》와 함께 3대 가집으로 꼽힌다. 청구는 한국, 영언은 노래를 뜻하는 말로, 한자로는 靑丘詠言·靑邱永言 등으로도 표기된다. 노래가 구전으로만 읊어지다가 없어짐을 한탄하여, 기록으로 후세에 전하고자 이 책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이본(異本)은 오장환본(吳璋煥本)·홍재휴본 이병기본(李秉岐本)·이가원본(李家源本)·최남선본(崔南善本)·이희승본(李熙昇本)·일본인본(日本人本;小倉進平, 藤田亮策) 등..
丁丑文科 朝鮮王朝時代 聯關 자료해설 2019-05-27 13:15:17 丁丑文科 ♣ 本 後孫(志世 1533-420731=希亮 13世孫)은 2008년 4월 어느 날 고문서 자료를 정리하다가 보물지도라도 찾은 것처럼 눈이 번쩍 띄는 일이 있었다. (마치 3년 전 이른바 광주파의 유언한,유응길,유응신 삼부자의 족적 1636~7년 사이 남한산성내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나? 6대에 걸쳐 이분들이 경기도 광주가 연고지이고 학자 정혜은씨의 논문, 소설 남한산성, 산성일기 등에서 나타났던 상황과 “여항”이란 분의 움직임, 이에 따른 족보의 변화, 문화류씨보감에 잘못 기록 나타나 있는 유응길을 추적 정축정시문과기록에 있는 5500여명의 합격자, 선무원정공신록권의 9600여명을 한사람 한사람 선별하여 찾아 본 결과의 보람으..
丙子胡亂 朝鮮王朝時代 聯關 자료해설 2019-05-27 13:13:31 후금의 막대한 공물요구와 명과 후금사이에 중립적 입장을 고수해온 조선에게 분명하게 후금(청)의 신하가 되라는 선택강요에 조선조정이 이에 반발, 요구해온 공물과 청에게 복종하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명나라 편에 섬으로서 야기된 전쟁. 애초에 정묘호란이 일어난 것은 명나라에 사대주의정책을 고수하던 조선에 대해 청이 마치 이빨빠진 호랑이를 섬기는 조선의 행태에 대해 경종을 주고자 한 일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등거리외교로 청의 분노를 야기하였다. 그런 이유로 정묘호란이 없었더라면 병자호란이 있을 턱도 없거니와, 잘 생각 해 보면,정묘호란이 일어난 다음에도 국제정세에 바르게 대처하여 청과의 외교를 가까이 했더라면 병자호란은 피할 수 ..
李适의 亂 發生 朝鮮王朝時代 聯關 자료해설 2019-05-27 13:11:58 李适의 亂 發生 이괄은 인조반정에 공이 많았는데도 논공행상에는 반정계획에 늦게 참가하였다 하여 2등공신이 되었으며 한성부윤(漢城府尹)에 임명되었다. 그러던 중 관서(關西) 지방에 호인(胡人)이 침입할 염려가 있다 하여, 이괄을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 휘하의 부원수(副元帥) 겸 평안병사로 좌천시켜 평안도 영변(寧邊)에 머무르게 하였다. 이에 그의 불만은 더욱 커져 반란을 꾀하게 되었는데, 조정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전교수(前敎授) 문회(文晦)의 밀고로 미리 알고 서울에 있던 이괄의 아들을 체포하였다. 이괄은 그의 부하 이수백(李守白)·기익헌(奇益獻), 구성부사(龜城府使)인 한명련(韓明璉)과 함께 가까운 병영(兵營)의 군사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