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세(柳志世*朗惠)TISTORY
윤두수(尹斗壽)에게 내리는 교서 본문
윤두수(尹斗壽)에게 내리는 교서
朝鮮王朝時代 聯關 자료해설
2019-05-30 16:29:34
청음집 제14권
교서(敎書) 6수(六首)
갈충진성동덕찬모좌운위성 공신(竭忠盡誠同德贊謨佐運衛聖功臣) 고(故) 영의정 해원부원군(海原府院君) 윤두수(尹斗壽)에게 내리는 교서
왕은 말한다. 문숙(文叔)이 이미 죽은 뒤에 위(衛)나라 임금이 국정을 걱정하는 부지런함을 폈으며, 안평(安平)이 이미 죽은 뒤에 한(漢)나라 황제가 공훈을 정하는 상을 내렸다. 이것은 참으로 공로에 보답하기를 도모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고, 충성심을 드러내어 현양하는 것은 살았거나 죽었거나 간에 차이가 없어서이다. 그러니 특별한 은수(恩數)를 미루어서 황천 아래에까지 빛나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생각건대, 경은 간기(間氣)를 품부받아서 나라의 종신(宗臣)이 되었다. 대개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나라에 몸을 맡길 때부터 이미 온몸을 다 바쳐 임금에게 보답할 뜻을 품었는데, 안에서 기른 것이 확고해 뽑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바깥으로 시행하는 것이 울연(蔚然)하여 볼만하였다. 이에 선왕(先王)께서 환하게 살펴보는 밝음을 가지고 뒷날에 크게 쓸 바탕으로 생각하였다. 풍진(風塵)의 경보가 홀연히 남쪽 변경에서 일어났으며, 파천(播遷)하는 행차가 이에 서쪽 변경까지 닿게 되자 드디어 난리에 임한 즈음에 어진 신하를 생각해 폐기되었다가 기용되는 처음에 정승으로 삼았다.이면(李勉)을 봉천(奉天)에서 얻으매 조정이 비로소 중해졌으며,이오(夷吾)를 강좌(江左)에서 만나 보매 풍채가 완전히 일신되었다. 가장 먼저 진(秦)나라의 조정에서 통곡하라는 충언을 올렸으며, 온 힘을 다해 요동(遼東)으로 건너가는 것이 좋은 계책이 아님을 진달하였다. 그리하여 왕사(王師)가 재차 힘을 써서 구원해 주게 하였으며, 국명(國命)이 거의 끊어져 위태롭던 데에서 다시 이어지게 해, 마침내 하늘을 돌게 하고 땅을 되돌리는 크나큰 공을 거두었으며, 거듭해서 태산(泰山)이 숫돌이 되고 황하(黃河)가 띠처럼 되도록 함께하는 맹서에 참여하였도다.소자(小子)가 호남(湖南)에서 군사들을 거느릴 때에 미쳐서는 태부(太傅)의 자리에 있으면서 주연(冑筵)에서 계책을 도왔다. 내 스스로 생각해 보매 덕이 부족한 나의 자질을 가지고서 어떻게 부왕께서 신칙하는 뜻에 부응할 수가 있었겠는가. 무릇 동정(動靜)이 있을 적마다 모두 함께 주선하였다. 그리하여 나아가면 눈앞에 있어 아름다운 훈계를 약석(藥石)처럼 항상 의지하였으며, 행하는 바에는 막히는 법이 없어 의심스러운 계책을 강하(江河)처럼 시원하게 결정하였다. 나는 경에게 맡겨서 계책을 운용하고 방략을 결정하였으며, 경은 나의 뜻을 잘 알고서 충성을 다하고 절개를 다하였다. 부탁하는 뜻에 부응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워서 참으로 밤낮없이 해이하게 하지 않았는바, 종시토록 온 마음을 다하는 데 힘입어서 상하 사람들에게 죄를 얻음을 면할 수 있었다.그런데도 신묘한 공을 조물주(造物主)에게 돌리고는 참으로 공을 다투지 않았으며, 성산(聖算)을 도와 중흥시켜 더불어서 이 경사를 칭하게 되었다. 시대 상황이 상전(賞典)을 시행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었으나, 나의 마음에서 어찌 일찍이 그것을 잊었던 적이 있었겠는가. 성대한 전례를 베풀어서 특별한 공을 포상하지 못했음이 개탄스러웠는데, 슬프게도 갑작스럽게 정령이 열수(列宿)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구천으로 이미 돌아가 버리고 말았으매 눈물만이 줄줄 흐른다. 이에 경에게 일등(一等)의 공을 책훈(策勳)하여 갈충진성동덕찬모좌운위성 공신으로 삼는다.아, 그대를 등용하여 배의 노로 삼으려 하였으며, 또한 그대를 염매(鹽梅)로 삼으려 하였다. 경과 함께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왔는데, 경과 함께 편안함은 누리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직 복록이 다 끝나지는 않았으니, 자손들에게까지 무궁하게 남겨 줄 것이다. 총령(寵靈)께서는 잘 흠향하고 묵묵히 도와주기를 바란다. 이에 위와 같이 교시하니,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