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류지세(柳志世*朗惠)TISTORY

광해군 내외(內外) 및 상궁(尙宮)옷 본문

光海主&文城郡夫人全州李氏崇慕會(대종약원)

광해군 내외(內外) 및 상궁(尙宮)옷

감사공 2023. 3. 11. 07:52

文城君夫人 柳氏 (光海君 妃)---후손으로서 1623년 그때를 생각하면서----

中殿柳氏(文城郡夫人)柳自新3

 

2013-12-12 21:53:30

 

문성군부인 유씨

 

 

- 자녀 1(폐세자)

 

 

- 판윤 유자신(柳自新)의 딸

 

 

- 친인척 : 아버지 유자신(柳自新), 외조부 정유길, 아들 폐세자 이질, 오빠 柳希奮(유희분), 사돈 박자흥, 처외주 이이첨

 

 

- 1576년 태어났으며 1623년 유배 생활 17개월 만인 48세에 사망한다.

 

 

광해군이 즉위하자 세자빈에서 왕비로 책봉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함께 폐위되어 1623년 유배지인 강화에서 서거하였다.

 

 

묘역

 

 

비두의 전면에는 구름속의 태양을 표현하고 후면에는 구름속의 달을 표현

 

 

광해군 묘와 비의 묘 비두는 표현방식이 동일함

 

 

- 묘역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송능리 산59번지에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유씨와 쌍봉으로 남향하고 있다. 19911025일 사적 제363호로 지정되었다. 묘역은 곡장(160×170×63)을 두르고 그 안에 봉분을 만들었으며 오른쪽이 광해군, 왼쪽이 문성군부인의 묘이다. 묘역은 전체적으로 단촐한 느낌을 주는데 그것은 대군의 예장(禮葬)에 준하였기 때문이며 봉분 주위에 석물은 없다.

 

- 문성군부인의 묘역을 보면 봉분 앞에 묘표가 있는데, 묘표는 민무늬의 장방형 대석(85×64×24)에 비신(57×18×164), 이수 부분은 구름무늬에 일월도가 있다. 광해군의 묘표와 달리 해가 구름에 가려져 있는 모양이고 뒷부분은 달이 구름에 가려져 있다. 묘표의 앞면에는 文城郡夫人柳氏之墓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天啓三年癸亥閏十月二十九日禮葬이라 쓰여 있다. , 1623년에 세워진 것이며 뒷부분에 행적이 새겨져 있으나 마모가 심하여 알아보기 힘들고, 글씨체로 보아 후대에 누군가가 다시 새겨 넣은 것으로 보인다. 글씨체도 조잡하다. 묘표 앞에는 상석(147×90×47)이 있고, 장대석을 놓았다. 상석 앞의 향로석(27×24×48)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 夫人墓表石陰記

 

 

天啓三年癸亥十月初八日病卒於江華 命輟朝三日進素膳

 

 

五日禮曹堂上郞廳內官及京畿監司終始護喪干殯諸具該曹

 

 

一一下送 上遣中使致祭 特命隧葬閏十月二十九日葬于楊

 

 

州赤城洞亥坐巳向禮曹請以王子例一等禮葬定軍守護王子

 

 

墓步數外加給三百步返魂於長興洞舊第定內官宮人奉朝夕

 

 

朔望及四名日四仲朔祭奠官備祭需

 

 

☆ 『인조실록3, 인조 1년 윤1029(을묘)

 

 

- 폐비인 문성군부인 유씨를 양주 적성동에 장사 지냄

 

 

- 문성군부인 유씨를 장사 지냈다. 부인이 108일 강화도의 위리(圍籬)에서 죽었는데, 상이 철조(撤朝) 3, 소선(素膳) 5일을 명한 다음, 예조의 당상·낭청과 내관 및 경기관찰사를 보내어 장례를 감호할 것을 명하였다. 지난날의 궁인과 족속 한 사람을 시켜 염습하도록 명하고 염빈에 드는 제반 도구를 모두 유사를 시켜 갖추어 보내고 또 중사를 시켜 치제하였다. 이 때 와서 양주 땅 적성동에 장사하였는데 수도(隧道)의 제도를 쓰고 표석을 세워 그 사적을 기록하게 했다. 무덤 지킬 사람을 두고 내관·궁인을 정하여 제전(祭奠)을 받들도록 하되, 제수는 관에서 내어 주게 하였다. 반혼시에는 예관을 보내어 성문 밖에서 맞이하라고 명하였다.

 

 

 

광해군내외(內外) 및 상궁(尙宮)

 

- 지정번호 : 민속자료 제 3

 

 

- 지정일자 : 19651012

 

 

- 中宮 柳氏 홍색저고리(紅彩)

 

 

광해군 비인 중궁 유씨의 표의로서 後代 唐衣의 시초로서 배자에서 출발하였다고 생각한다. 겉감은 홍색 명주에 자주깃과 고름이 달려 있고 안은 흰 명주이다. 그리고 양 옆이 트여 있다. 옷 안자락에 丙子生中宮柳氏命衣無炳萬歲身如金剛千靈雪消萬福永昌所願如意心神安寧聖神孫繼繼承承(中宮柳氏의난 해 丙子 1576)이라는 祝願文이 묵서로 되어 있다. 치수는 길이 78, 59, 화장 98.5, 옆트임 38, 고름은 나비가 2.3에 길이가 36로서 좁고 짧다.

 

 

광해군비 유물

 

 

- 청삼(靑衫)

 

 

- 광해군비(光海君妃, 15761623), 중요민속자료 제 215

 

 

- 길이 71, 화장 91, 52

 

 

- 광해군비는 조선조 제 15대 광해군(1609-1623)의 부인으로서 폐비된 중궁 유씨(柳氏)이다. 청삼은 북청색 화조(花鳥)문단으로 된 홑옷이다. 길이는 길고 양옆은 트여 있어 당의와 유사하다. 저고리 안자락에는 "병자생왕비유씨원명의(丙子生王妃柳氏願命衣)"라는 명문이 적혀 있다.

 

 

수죽 정창연(鄭昌衍) : 문성군부인 유씨의 외조부 정유길의 아들

 

 

- 광해군 때 억울하게 옥사에 관련된 많은 사람들을 조카딸인 광해군의 비() 유씨(柳氏)의 도움으로 구명하므로써 후세의 칭송을 받았다. 말년에 그가 늙고 병들어 있으매 왕은 내의를 보내어 병을 간호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묘는 동작구 사당동 산 32-2 동래정씨선영(東萊鄭氏先塋)에 부인

 

-215광해군비 단배자」→「광해군비 당의(光海君妃 唐衣)(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중요민속자료 제62고종사제복적초의(赤綃衣, 중요민속자료 제215광해군비 단배자광해군비 당의(光海君妃 唐衣)로 명칭이 지난 417일자로 변경됐습니다.

 

광해군 단배자는 지난 19873월 지정됐으나 그동안 연구·조사에 의하면 복식의 형태상 길이가 길고, 소매 아랫부분이 직선이며, 옆선이 길게 트인 당의(唐衣-당적삼 또는 당저고리·조선시대 여자들의 예복)해당하며, 겉깃 안쪽에 병자생왕비유씨원명의(丙子生王妃柳氏原命衣)라는 묵서(墨書-먹물로 쓴 글씨)가 있어 광배군의 비()인 문성군부인(文城君夫人·1576~1623)의 옷으로 추정돼 광해군비 당의(光海君妃 唐衣)로 변경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