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세(柳志世*朗惠)TISTORY
장유(張維 1587~1638) 본문
장유(張維 1587~1638) 作
음악 예술 문학 등
2019-07-26 21:22:01
- 장유(張維 1587~1638)
雪壓松筠也欲摧 / 눈 쌓여 송죽(松竹)도 곧 꺾일 태세인데
繁紅數朶斬新開 / 한창 붉은 봉오리들 산뜻하게 피어나네
山扉寂寂無人到 / 아무도 찾지 않는 고요한 이 산중에
時有幽禽暗啄來 / 눈 속에 핀 동백꽃[雪裏山茶]이따금 새 날아와 남몰래 꽃을 쪼네
「설리산다(雪裏山茶)」
『계곡집(谿谷集)』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 중 한 사람인 계곡(谿谷) 장유(張維)의 시입니다.
어려서부터 같이 공부한 친구 임동야(林東野 동야는 임동(林埬)의 자)가 늘그막에 한가히 지낼 생각으로 금성(錦城 나주(羅州)의 옛 이름)에 만휴당을 짓고 계곡에게 글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계곡은 「임동야를 위해 지은 만휴당 십육영[晚休堂十六詠 爲林東野賦]」이란 제목으로 만휴당의 풍경을 노래한 시 16수를 지어서 그에게 주었습니다. 이 시는 그 가운데 한 수로, 흰 눈이 쌓여 있는 추운 겨울에 선홍빛으로 곱게 피어 있는 동백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눈 내린 깊은 산중에 찾아오는 이 하나 없는데, 흰 눈이 온 세상을 다 덮고 있으니 더욱 고요합니다. 시간이 멎은 듯 적막하여 조금은 쓸쓸하기도 한 가운데 반가운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눈 쌓인 하얀 가지 위에서 더 붉어 보이는 선홍빛 동백꽃 봉우리들, 그리고 그 꽃이 불러들인 새들의 바쁜 몸짓과 지저귐. 적막한 산골의 풍경에 다시 생기가 돕니다.
‘이십사번화신풍(二十四番花信風)’이란 말이 있습니다. 소한(小寒)부터 곡우(穀雨)까지 스물네 번 꽃 소식을 전하는 바람이란 뜻입니다. 『연감류함(淵鑑類函)』 권6 천부(天部) 풍(風) 조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소한(小寒) 소식은 매화(梅花)ㆍ산다(山茶 동백꽃)ㆍ수선(水仙 수선화)이 전하고, 대한(大寒) 소식은 서향(瑞香 팥꽃나무과의 상록 관목. 일명 천리향)ㆍ난화(蘭花 난초의 꽃)ㆍ산반(山礬 산반화)*이 전하고, 입춘(立春) 소식은 영춘(迎春 개나리)ㆍ앵도(櫻桃 앵두꽃)ㆍ망춘(望春 목련)이 전하고, 우수(雨水) 소식은 채화(菜花 유채꽃)ㆍ행화(杏花 살구꽃)ㆍ이화(李花 자두꽃)가 전하고, 경칩(驚蟄) 소식은 도화(桃花 복숭아꽃)ㆍ체당(棣棠 산앵두꽃)ㆍ장미(薔薇)가 전하고, 춘분(春分) 소식은 해당(海棠 해당화)ㆍ이화(梨花 배꽃)ㆍ목란(木蘭 목란나무의 꽃)이 전하고, 청명(清明) 소식은 동화(桐花 오동나무꽃)ㆍ맥화(麥花 보리꽃)ㆍ유화(柳花 버드나무꽃)가 전하고, 곡우(榖雨) 소식은 목단(牧丹 모란)ㆍ도미(酴釄 장미과의 만생(蔓生) 관목)ㆍ연화(楝花 멀구슬나무)가 전한다. 이것이 이십사번화신풍이다.”
우리나라 절기와 조금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한겨울부터도 꽃으로 절기를 가늠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달력의 숫자를 짚으며 시간의 흐름을 좇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피어나는 꽃과 그 꽃이 필 즈음 느껴지는 바람에서도 절기의 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감으로 계절의 변화를 짚는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에서 꽃향기가 나는 것 같습니다. 올 한 해도 여전히 바쁘시겠지만 철마다 전해 오는 꽃 소식도 챙겨 가며 보내시길 바랍니다. 꽃 소식과 함께 향기로운 세상 소식도 쉬지 않고 전해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 산반(山礬): 조선 후기의 학자 이만영(李晩永)이 1798년(정조22)에 엮은 유서(類書)『재물보(才物譜)』 권7 물보(物譜)3에, “나무의 키는 1장(丈) 가량 된다. 잎은 치자나무와 비슷하며, 열매는 광택이 나고 굳고 단단하며, 꺼끌꺼끌하다. 겨울철에도 시들지 않으며, 정월에 꽃이 피는데, 눈처럼 희다. 여섯 개의 누런 꽃술이 나오며, 매우 향기롭다. 열매는 크기가 산초 열매만 하며, 익지 않았을 때에는 검푸른 색이었다가 익으면 황색이 된다.”라고 한 내용이 보인다.
글쓴이 : 하승현(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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