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세(柳志世*朗惠)TISTORY
李恒福에게 내린 교서( 亨難功臣) 본문
李恒福에게 내린 교서
나의 이야기(行跡)
2014-01-26 20:12:28
光海王이 亨難功臣 三等 鰲城府院君 李恒福에게 내린 교서 해석 문
청음집 제14권
교서(敎書) 6수(六首)
분충병의결기형난 공신(奮忠秉義決幾亨難功臣) 좌의정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 이항복(李恒福)에게 내리는 교서
왕은 말한다. 대개 듣건대, 신하가 나라를 섬기는 의리는 국난을 평정하는 것보다 중한 것이 없고, 왕자(王者)가 세상을 다스리는 책무는 반드시 먼저 공 있는 사람에게 보답해야 하는 데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경종(景鍾)과 이정(彛鼎)이 있어 주(周)나라에서 명(銘)을 새겼고,인각(麟閣)과 운대(雲臺)를 세우고서 한(漢)나라에서 화상(畵像)을 걸었던 것이다. 열성(列聖)들의 아름다운 전례를 널리 생각하고 전 시대의 아름다운 법전을 두루 상고해 보니, 의당 옛 규례를 참고하여 후진들을 고무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건대 경은 암랑(巖廊)의 숙덕(宿德)이었고, 사림(士林)의 종장(宗匠)이었다. 쇄락(洒落)한 모습은 빙호(氷壺)나 옥형(玉衡)과 같아서 부귀를 가지고서도 바꿀 수가 없었고, 청명한 모습은 청천(靑天)의 백일(白日)과 같아서 종들조차도 역시 알아보았다. 탁월한 모습은 치우침이 없었던 여대방(呂大防)이었으며, 담박한 모습은 허물이 적었던 거백옥(蘧伯玉)이었다. 이에 선왕(先王)께서 믿어 의지함이 아주 독실하였으며, 과인(寡人)이 총애하는 마음은 더욱더 융숭하였다.
지난번에 나라의 운세가 좋지 못함을 틈타서 적신(賊臣)이 난리를 도모하였는데, 조종께서 하늘 위에서 묵묵히 도와주심에 힘입어 흉도들을 잡아 법대로 처결할 수 있었다. 그 음모를 가장 먼저 발각한 것은 비록 고을의 수령이 충성을 바친 데에서 나왔으나, 끝내 그 정상을 캐물어서 토설하게 한 것은 참으로 묘당에서 잘 협조하는 데에 힘입었는바, 봄부터 여름을 거쳐 가을에 이르기까지 항상 밤낮없이 온 마음을 다하였다. 공로를 책훈(策勳)하는 것은 실로 종사(宗社)에 관계가 되고, 맹서를 약속하는 것은 대개 산하(山河)를 두고 펴는 법이다. 이에 경을 삼등(三等)의 공에 책훈하여 분충병의결기형난 공신으로 삼는다.
아, 범의 꼬리를 밟고 봄날의 얼음을 디디는 위태로움에 대해서는 내가 경계하는 것을 어찌 감히 잊을 수 있겠는가. 정이(鼎耳)와 옥현(玉鉉)의 길함에 대해서는 경이 잘 조처하여 공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혹시라도 평소에 먹은 마음을 저버린다면 맹세하였던 금궤(金櫃)가 남아 있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교시하니, 잘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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