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류지세(柳志世*朗惠)TISTORY

柳潛(工曹判書)19世 渾 본문

安山宗中(19世 判書公 潛 后)

柳潛(工曹判書)19世 渾

감사공 2023. 3. 5. 14:31

柳潛(工曹判書)19世 渾

 

2019-07-21 22:33:10

 

(**** ** )

 

 

 

류잠(柳潛), 판서공(判書公), Ryu, Jam, 생몰년:1509-1576, 대승공 19世 宣祖朝

 

文臣. 中門祇候使公派, 사소(士昭)

 

중랑장 중의(中郞將 仲宜)5대손이요, 돈녕부부정 수천(敦寧府副正 壽千)2자로 중종(中宗) 4(1509) 己巳 624일에 태어났다.

 

일찍이 생원에 급제하고 35庚子(1540)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明宗) 원년 丙牛(1546) 11월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이듬해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교리(敎理)를 지내고, 3戊申(1548) 2월 도로 지평(持平)에 전임되었다가 곧 병조정랑(兵曹正郞)으로 옮기었다. 평안도 암행어사(平安道 暗行御史)로 나가 굶주리는 백성들을 진휼(賑恤)하고 돌아와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을 거쳐 7壬子 (1552) 4월 집의 (執義)에 승진하고 이어 홍문관부응교(弘文館副應敎). 의정부사인(議政府舍人). 상의원정(尙衣院正)등을 두루 지냈다.

 

9甲寅(1554) 9월 경복궁(景福宮)의 수리에 노고가 많음으로써 당상(堂上)에 승진하고, 이듬해 8월 전주부윤(全州府尹)으로 나갔다가 13戊午(1558) 2월 형조참의(刑曹參議)에 옮겼더니 이듬해 승정원동부승지(承政院同副承旨)에 발탁되었다.

 

15庚申(1560) 5월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재직중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갔다가 돌아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오르고 17壬戌(1562) 정월에 병조참의(兵曹參議) 10월에 형조참판(刑曹參判)에 제수되었다.

 

19申子(1564)에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로 나갔다가 이듬해 중종비(中宗妃) 문정왕후(文定王后)의 상()에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로서 수릉관(守陵官)에 임명되어 1급 승진의 특전을 입고, 동시에 아들 자신(自新)에게 태릉참봉(泰陵參奉)이 제수되었다.

 

선조(宣祖) 즉위 丁卯(1567) 11월에 공조판서(工曹判書)에 제수되고 5壬申(1572)에 형조판서(刑曹判書)에 전임되었더니 7甲戌(1574)12월에 한성판윤(漢城判尹)이 되었다.

 

9丙子 1016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68세로 시흥군 안산 광곡 목실리 인좌(始興郡 安山 廣谷 木實里 寅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하동정씨(河東鄭氏)는 증참판 승렴(證參判 承濂)의 따님으로 2남을 두어 장자 자신(自新-광해군 장인)은 한성판윤(漢城判尹)으로 국구(國舅)가 되어 문양부원군(文陽府院君)에 책봉되었으며, 2자 덕신(德臣)은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으로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증직되었다.

 

 

 

1. 中宗 己巳(1509) 624日 出生

 

2. 20세 되던 中宗 戊子(1528)小科 生員에 급제

 

3. 32세 되던 1540년에 文科에 급제

 

4. 38明宗 丙午(1546)司憲府持平

 

5. 39丁未(1547) 9月 弘文館으로 옮기어 副修撰 10月 修撰 12月 校理 知製敎 兼 經筵侍讀官 등을 차례로 歷任, 당시 中宗實錄記注官으로 參與

 

6. 40戊申(1548) 2司憲府 持平, 3月 兵曹正郞으로서 平安道 暗行御史

 

5다시 弘文館 副修撰 11月 司憲府 掌令

 

7. 41己酉(1549) 5月 弘文館 修撰, 6月 校理, 7月 司憲府 掌令

 

8. 44壬子(1552) 4司憲府 執義, 7月 弘文館 副應敎, 12月 議 政府 舍人

 

9. 45癸丑(1553) 5月 尙衣院正

 

10. 46甲寅(1554) 1부터 시작한 景福宮修理으로 9月 堂上陞進, 掌樂院 正이 됨

 

11. 478月 全州府尹 부임

 

12. 50戊午(1558) 2刑曹參議

 

13. 51己未(1559)同副承旨

 

14. 52庚申(1560) 5兵曹參議,

 

15. 그해 聖節使로 중국에 다녀오시고 中樞府僉知가 됨.

 

16. 53壬戌(1562) 正月에 다시 兵曹參議, 10刑曹參判으로 승진

 

17. 55甲子(1564)忠淸道觀察使로 부임, 당시 下三道守令들과 조력 嘉靖譜가 발간됨

 

1565년 발간된 우리 문화류씨의 족보(嘉靖譜) 101912쪽 맨 끝 부분에

 

淸洪道 觀察使 柳潛이라 기록되어있다.

 

18. 56乙丑(1565) 文定王后同知中樞府事로서 守陵官, 功勞一資級 陞進

 

298대 한성부윤 류잠 (柳潛) 명종22(1567) 48~ 명종22(1567) 425

 

19. 57宣祖 즉위 丁卯(1567) 11工曹判書

 

20. 연대미상 京畿道觀察使도 역임

 

21. 64宣祖 壬申(1572)刑曹判書

 

22. 65癸酉(1573)庭試試官

 

23. 66甲戌(1574) 12漢城府判尹, 品階資憲大夫에 오름.

 

310대 한성판윤 류잠 (柳潛) 선조 7(1574) 1128~ ?

 

24. 68丙子(1576) 1016으로 집에서 享年 68로 돌아가심.

 

 

 

柳潛 京畿觀察使 書

 

柳潛京畿觀察使兵馬水軍節度使로 임명한 후 내린 교서로 구봉령이 대신 지었다. 農桑을 우선하고 학교를 정비하고 민정을 진작시키고 詞訟을 번거롭지 않게 하고 학정을 하는 관리들을 쫓아내고 의탁할 곳이 없는 이를 도울 것 등 관찰사의 소임을 일깨우는 내용이다.

 

 

 

人君?四海之遙一已之聰明有限田野隔九重之邃庶民之休戚難知故任承流宣化之臣以擧興利補弊之政岳牧始建於虞世伯帥繼設於周時憩棠之詠興於前?之美踵於後斯皆以詢俗爲本尤必務得人是要念惟畿甸之分區諒乃樞轄乎諸道統理疆宇外郡之承式攸存環衛京都內服之賦供最??玆先朝之末歲而値殃禍之?大役連年黎蒸旣困於調集休養無日老稚那免於流離間有顚壑之?又多載途之慘逮予寡躬之嗣服益云疵政之失宜戒切淵氷澤尙?於下究憂軫宵?化猶?於旁流科條總歸於虛名號令徒煩於文具屢聞侵徵之暴未見惠鮮之仁固無遑宅邑而繼居誰得望推心而保子國如大木之經?深根欲顚人似痼疾之去身餘命僅活況今凶饉之倍昔豈可撫摩之乖方庶簡旬宣之人?專澄汰之責卽遂應於僉擧予何勞於疇咨卿秉心夷和執量寬厚歷揚顯秩時病之備嘗已多逮事累朝?之密察蓋久豈須??於苛細唯能飭?乎綱維玆授卿本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卿其往愼乃司無替予命農桑不可緩闡黎庶衣食之原學校所必先惇國家敎化之典酌民情之攸好節壤俗之最當辨理由法則詞訟不繁懲勸以公則奸盜自?至於邑宰之肆虐?黜無留亦越鎭帥之逞貪?罰何惜?寡失所而如救焚拯溺?獨無依而若漬?蘇枯善良俱旌幽隱畢達使風移而俗易致飢食而寒衣居安思危綢繆?勤於未雨有備無患撲滅寧待於將燃是實節目之大端?復注措之足說第常以古道作則切勿爲流俗所移正上下同懼之辰伊內外交修之際莫謂纖微而有忽雖甚窮僻而必周罪大?只可稟裁階通訓率皆專斷予之望卿至此卿其深念乎哉於戱任勿貳去勿疑?末方慕於前聖柔不茹强不吐臣隣亦效於昔賢故玆敎示想宜知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