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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세(柳志世*朗惠)TISTORY

[고전명구 418] 시절이 빛을 다하면 본문

한국고전번역원 제공

[고전명구 418] 시절이 빛을 다하면

감사공 2025. 6. 24. 21:53

[고전명구 418] 시절이 빛을 다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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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57()

사백십팔 번째 이야기

 

 

시절이 빛을 다하면

 

 

 

 

 

꾀꼬리는 게을러졌고 제비는 노쇠하였다.

고운 빛깔의 경치는 초여름의 아름다움이라서,

초록빛 잎사귀들이 빼곡히 우거졌고 붉은빛 꽃잎은 듬성듬성하다.

너무 쉽게 사라져 가버리는 봄빛은 견디기가 어렵지.

백 년 인생도 꿈일 뿐이니, 세상 모든 일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

 

 

 

鶯慵燕老, 正屬麗景初姸, 綠暗紅稀, 叵耐韶光易歇.

 

앵용연로, 정속려경초연, 녹암홍희, 파내소광이헐.

 

百年亦夢爾, 萬事於吾何?

 

백년역몽이, 만사어오하.

 

 

 

- 신흠(申欽, 1566~1628), 상촌집(象村集)』 「수기치어(睡起致語)중에서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꿈의 여운이 달아나기 전에 얼른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곤 한다. 꿈에서 나는 다른 시절을 살고 왔다. 꿈의 시절 안에서 이제 안부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게 된 사람과 도란도란 긴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지금은 다 허물어진 옛날 시골집 방에서 가족들과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돌아갈 수 없는 지난 시절의 어느 지점에 잠깐 애틋하게 놓였다가 오는 것이다. 꿈에서 걸어 나온 직후에 남는 게 심신을 휘감는 감각일 때도 있지만, 어느 날엔 명징한 문장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꿈의 자극에 기인해 발동한 문장은 잠과 꿈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재빨리 메모장으로 옮겨 적어 두어야만 한다. 그렇게 모아온 문장들에는 크고 작은 쓸쓸함이 묻어 있다.

 

어떤 시절은 몹시 찬란해서 동시에 슬프기도 하다. 시절이란 말이 곧 시간[]의 마디[]’를 뜻하는 것처럼, 지금 우리의 시간에는 끝이 있다. 유한(有限)한 시간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의 꽃잎에 슬픔 한 방울이 맺혀 있는 건, 꽃의 시절은 머지않아 다 떨어지고 말 것이기 때문일 테다. 조선시대를 살았던 신흠(申欽, 1566~1628) 선생도 잠깐의 단잠 끝에 일어나 밀려드는 생의 허망함에 대해 적었다. 그는 수기치어(睡起致語)에서 자신을 두른 풍경과 소리가 너무 빨리 봄을 지나 여름으로 향하고 있음을 자각하며, 봄빛은 견디기가 어렵다고 말한다. 활짝 피어난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머지않아 찾아올 이별의 장면을 동시에 떠올리는 사람에게 봄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만개한 꽃 앞에 서 있으면서도 색이 바래 금세 떨어질 꽃의 결말을 자꾸 가늠해 보게 되는 것이다. 봄의 애달픔은 먼 데까지 번져서 이내 신흠 선생은 인생 전체도 꿈일 뿐이니, 세상만사가 무슨 의미냐며 통탄한다.

 

나 역시 봄을 무척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는데, 올봄에는 불쑥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용기가 났다. 결말의 이별을 일찌감치 슬퍼하며 절반의 기쁨만 느끼는 삶은 충분히 살아보았으니,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시경산유추(山有樞)중에 그대에게 멋진 옷이 있는데도 입고서 옷자락 끌며 돌아다니지 않으면, 그대에게 거마(車馬)가 있는데도 달리지 않고 몰지 않으면, 속절없이 덜컥 죽게 된 뒤엔 다른 사람이 이를 즐길 것이다.[子有衣裳, 弗曳弗婁. 子有車馬, 弗馳弗驅. 宛其死矣, 他人是愉.]”라는 구절이 있다. 언젠가 끝이 난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오늘 열렬히 사랑하는 쪽을 선택해야 한다. 아까워하지 말고 시절 안에 놓여 있을 때 한껏 꽃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최선이다. 지금 시절에 주어진 선물 같은 순간의 즐거움에 몰두하려면 슬픔을 제쳐두는 용기를 내야만 한다.

 

빛을 다한 시절은 어디로 갈까. 충분히 반짝였던 시절은 빛을 다하고 나서도 그림자를 남기리라. 그림자처럼 생의 뒤편에서 잠자코 있다가, 종종 꿈에 불쑥 등장하기도 하는 시절 그림자. 인생은 생각처럼 쉽게 무의미해지지 않는 것 같다. 신흠 선생이 한철 봄처럼 지나가는 인생이 무슨 의미냐며 한스러워했지만, 의미와 무의미를 논할 필요도 없이 어쩌면 세상만사가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내가 모르는 이 시절의 의미는 나중에 꿈에서라도 깨닫게 될 테고, 그때 꼭 했어야 하는 말은 언젠가 꿈에서라도 하게 될 수 있다. 어느 날 꿈에서 깨자마자 메모장을 열어 꿈에서 좋았던 걸로 충분했다.’라고 적어 두었다. 충분했던 잠깐의 시간을 모으면서 나의 시절들을 채워가고 싶다. 짧고도 긴 우리의 시절에는 영영 마침표가 찍히지 않고, 누군가의 꿈속에서 불쑥 또 이어져갈지도 모른다. 시절이 빛을 다하고도 이어질 생의 의미는 효용 너머에 있다.

 

봄빛이 한 뼘만큼 키워놓고 떠난 꽃나무 가지에선 잎이 넓어지다가 이내 열매가 달릴 것이다. 그러다 가을빛에 열매가 익어 떨어지고 나면 가지 위로 쌓인 눈송이를 녹이는 겨울빛이 찾아오겠지. 시절은 저마다의 빛으로 우리를 키운다. 봄빛이 다하고 여름빛이 찾아왔으니, 꾀꼬리와 제비는 잠시 게으르게 두고 우리는 재빨리 여름만의 기쁨을 누릴 차례이다.

글쓴이 최다정

고려대학교 박사과정 수료, 한자 줍기시가 된 미래에서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