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2023. 4. 15. 08:23

반달곰네 과일가게

엄원태

반달가슴곰 부녀의 과일가게는
점심때가 지나서야 열린다

아빠곰은 딸 하나가 전 재산이다
아빠곰은 겨울 동안 더 비쩍 말랐다
아빠 몫까지 뚱뚱한 딸 곰은
가슴에 커다란 반달을 두 개나 달았다
얼굴은 더 큰 보름달이다
미간이 넓은 두 눈은 까맣게 빛나고
납작코에 부르튼 두꺼운 입술과 부스스한 단발머리
생각이 늘 모자란 데다 행동마저 굼떠서
마흔 넘도록 시집 못 가고 아빠랑 산다

반달곰 부녀의 과일가게는 간판 따윈 없지만
과일상자를 번쩍번쩍 들어 옮기는
효녀 딸이 있어 알 사람은 다 아는 동네 명물이다
부녀는 좀체 씻는 법이라곤 없는데
꼬질꼬질한 손맛이 과일에도 배는 걸까,
과일들은 신통하게도 달고 시원했다

반달곰 부녀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나
시장 입구에 과일 가게를 열면
경칩도 이미 지나 동네엔 바야흐로 봄이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