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希亮(21世) 監司公

柳希亮에 대하여(2)

감사공 2023. 2. 13. 17:45

柳希亮 眞蹟

玉皇高拱五雲端 황제가 오색구름에 팔짱끼고 앉았는데

絳節何人自弁韓 붉은 부절 받들고서 변한서 온 이 누구인가

追遠至情虞孝盡 조상 추모하는 마음 순임금처럼 지극하여

簡賢敷奏翟儀完 현인에 뽑혀 아뢰니 왕후 위의(威儀) 완성되네

卽今大事無踰此 현재의 큰일로서 이것이 가장 중요하니

從古忠臣不擇安 예부터 충신이란 편안함을 택하지 않네

十載舊賓珍重意 십 년 된 오랜 손님 진중한 뜻 지녔는데

薊門霜雪黑貂寒 계문의 눈서리에 검은 초피(貂皮) 차가워라

 

만력 병진 동짓달 상완(上浣 : 상순)

유희량(柳希亮 [1575(선조8) ~ 1628(인조6)])

柳希亮 眞蹟

柳希亮 眞蹟

柳希亮 眞蹟

 

이미지 : 명공진적 표지

이미지 : 예조참판 겸 경기관찰사 柳希亮의 친필 : 본문 중간 중간 좀 더 푸른 부분은 좀 먹은 자국 2011531일 고문헌을 찾아서

 

필자 : 김대덕(金大德)에 대하여

 

1577(선조 10)1639(인조 1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광산. 자는 득지(得之), 호는 소봉(蘇峰이안당(易安堂). 아버지는 동지돈령부사 원록(元祿)이며, 큰아버지 감찰 원상(元祥)에게 입양되었다.

 

1601(선조 34) 진사가 되고, 이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가 되었다.

 

이듬해 예문관검열을 거쳐 1603년에 대교가 되었다.

 

1617(광해군 9)에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서궁에 유폐시키려는 폐모론에 극력 반대하다가 삭직 당하였다. 인조반정 후 사간이 되어 인조의 사친추숭(私親追崇)의 잘못을 주장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포위되자, “척화신(斥和臣)을 적에게 보내자.”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인조의 동의를 얻음으로써 화를 부를 소지를 없앴다. 벼슬이 참판에 이르렀다.

 

글씨에 뛰어났는데, 초서·예서에 능하였다.

 

<개요>

 

조선조 중기 文筆名聲을 날린 명사들의 親筆 簡札을 모아 편집하고, 필자의 略歷을 간략하게 소개한 書帖.

 

<내용>

 

조선조 중기 名士들의 簡札 등을 모아 편집한 書帖. 1. 筆寫本(親筆).

 

조선조 중기 金大德·趙翼·崔鳴吉 文筆名聲을 날린 名士들의 親筆 簡札詩句 등을 모아 편집하고 필자의 貫鄕·姓名·字號·出生年月·及第·官歷··諡號 略歷을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필자는 金大德(1577-1639)·(1568-1613)·孫倜( ? )·金壽賢(1565-1653)·趙翼(1579-1655)·趙希逸(1557-1638)·崔有源(1561-1614)·黃敬中(1569-1630)·徐景雨(1573-1645)·李貴(1568-1633)·鄭廣成(1576-1655)·睦大欽(1575-1638)·尹孝全(?)·(1562-?)·趙靖(1554-?)·崔鳴吉(1586-1647)·金時讓(1581-1643)·梁應洛(1572-1620)·高用厚(1577-?)·金光煜(1580-1656)·趙纘韓(1572-1631)·李景稷(1577-1640)·丁好恕(1572-?)·李昌庭(1573-1625)·柳希亮(1575-1628)·李聖求(1584-1644)·李德洙(1577-1645)·尹珙(1574-?)·趙緯韓(1577-1669)·張維(1587-1638) 30명으로 이들의 簡札 和韻詩를 편집하였다.

 

이 중 崔鳴吉의 간찰은 일반적인 문안 편지이다. 필자 소개는字 子謙, 號 遲川, 全州人, 1586년 출생, 1569(선조2) 급제, 領相, 靖社功臣, 完城府院君, 1647(인조25) , 62, 諡號 文忠, 1637(인조15)主和論을 폈으며, 文章錄에 들어 있고 문집이 있다고 하였다. 趙希逸의 간찰은 일반적인 문안 편지이다. 필자 소개는字 怡叔, 號 竹陰, 林川人, 1575년 출생, 1602(선조35) 及第, 兵曹參議, 沙溪 金長生從遊, 文章錄筆苑錄에 들어 있다고 하였다. 趙緯韓의 시는 紫霞道人에게 次韻하여 보낸 1618(광해10) 7월에 지은 것이다. 필자 소개는字 持世, 號 玄谷, 漢陽人, 1577년 출생, 1609(광해1) 及第, 知中樞府事, 文章錄, 玄洲 纘韓 弟, 83, 文集이 있는데 元宗追崇을 청한 가 들어 있다고 하였다.

 

조선조 중기 名士들의 文章親筆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및 고려대학교 한적 도서관 자료를 편집---朗惠 柳志世

 

柳希亮 좌측에서 6번째줄 관직,성명,서명

柳希亮 좌측에서 6번째줄 관직,성명,서명 확대 사진

 

 

柳希亮 文科

역대 경기관찰사

柳希亮 경기관찰사

화기도감의궤에 관여한 柳希亮

동국신속삼강행실찬집청의궤에 관여한 柳希亮

양어사송덕시고에 관여한  柳希亮

충열록에 관여한 柳希亮

김응하 장군 비

기언가고에 실린  柳希亮

[정의]

조선 후기에 편찬된 인물의 전기.

[내용]

필자 미상. 1. 필사본. 이 책에 수록된 인물전기는 허목(許穆)이 지은 미수기언(眉叟記言)원집과 별집에 실려 있는 내용을 뽑아 엮은 것으로, 편자와 편찬연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책은 미수기언중의 인물자료 초록에 해당한다.

권두에는 허전(許傳임제(林悌김천령(金千齡) 12인의 약력이 기록되어있고, 본문에는 최영경(崔永慶정개청(鄭介淸윤선도(尹善道조경(趙絅우현보(禹玄寶기자헌(奇自獻김귀영(金貴榮이왕(李旺서기(徐起이남(李楠유희량(柳希亮박지화(朴枝華) 12인의 유사(遺事), 또는 묘비명들이 실려 있다.

이들은 대부분 동인, 또는 남인계열의 대가들로서 당쟁에서 희생된 인물들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이들의 억울함을 밝히려는 당파적 의식에서 남인계열의 인물에 의하여 편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당쟁사연구의 자료로 가치를 지닌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미수기언(?記言)

 

공거문에 실린 柳希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