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2023. 3. 18. 07:59

고구마의 경전

복효근

겨울을 넘긴 고구마는 
툭툭 힘줄이 불거지기 시작한다 
새 봄의 기미를 알아채고는 
제 몸에 혈관을 트는 것이다 
물길을 트는 것이다 
물그릇에 잠가두면 
뿌리가 내리고 검푸른 줄기가 잎과 함께 돋는데 
고구마 순이 자라는 만큼 
그 혈관과 물길로 
새싹에 줄기에 젖줄을 대는 것이다 
넌출이 무성하게 뻗은 어느날 
정작 고구마 덩이는 그 안이 텅 비게 된다 
기꺼이 그것 때문에 몸 바칠 수 있다면 
그 푸른 잎들을 고구마의 경전이라고 해야 옳다 
껍질만 쭈글쭈글 내려앉은 그것을 이제 
더 이상 고구마라 부르지 않는다 
어느 새 앞장의 경전이 뒷장에게 
그 잎이 또 그 뒷장에게 
그리하여 긴 탯줄을 이루어 
고구마를 
한 계절 너머의 어느 세상에 전해주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