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海主&文城郡夫人柳氏(21世)
광해주 제주도 이배 시 시와 세자 시절 시문
감사공
2023. 2. 28. 19:57
風吹飛雨過城頭 장氣薰陰百尺樓
滄海怒濤來薄暮 碧山愁色帶淸秋
歸心厭見王孫草 客夢頻驚帝子洲
故國存亡消息斷 煙波江上臥孤舟
부는 바람 뿌리는 비 성문 옆 지나는 길
후덥지근 장독 기운 백척으로 솟은 누각
창해의 파도 속에 날은 이미 어스름
푸른 산의 슬픈 빛은 싸늘한 가을 기운
가고 싶어 왕손초를 신물나게 보았고
나그네 꿈 자주도 제자주에 깨이네
고국의 존망은 소식조차 끊어지고
연 기 깔린 강 물결 외딴 배에 누웠구나
내용 풀이=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이 1623~1637=15년간 강화도 교동에서 위리안치 되었다가 인조가 청태종에게 굴욕당하고 난 후 혹시나 하여 1637년6월6일 이배될때 10일 걸여 첫 기착지 제주도 어동포에 내려 30여명의 병졸에 이끌려 제주도에서 4년여 갖은 고초를 받다가 그 무더운 여름인 1641년7월1일(음력) 67세로 졸하게 되어 약 45일만인 1641년 8월16일 남양주에 묻이게 된다.
왕노릇 15년 밖에 나갈 수 없이 15년을 보내여만 되었다.
윗 시는 강화도에서 제주도로 이배 중 을픈 시이다.
배 가운데예 가두고 그 어느 곳도 볼 수 없도록 높이 누각을 세웠다하여 여기가 제주도라 하니 놀래면서 눈물을 흘렸다함.
처남 류희발의 궤에서 찾았다는 세자시절의 시
三淸洞 詩
丹壑陰陰翠靄間
碧溪요草繞天檀
煙霞玉鼎靈砂老
蘿月松風鶴未還
光海君 王世子 祗의 詩 <續雜錄에서>
세자를 폐하니 이때 나이 26세였다.
그는 나룻배에서 시를 읊기를
麈寰翻覆似波瀾 / 번복되는 세상일 파도 같으니
何必憂愁心自閑 / 하필 근심하리 마음 절로 한가하다네
二十六年眞一夢 / 26년 참으로 한 꿈이로다
好須歸去白雲間 / 구름 사이로 돌아가게 되어 좋다네
하였다.
光海君의 폐세자(廢世子)가 귀양살이에 있으면서 詩를 읊기를,
本是同根何太薄 / 본시 형제간인데 이다지도 박할 쏜가
理宜相愛亦相哀 / 서로들 사랑하고 슬퍼해야 하지 않소
綠何脫此樊籠去 / 어떻게 하면 이 유배지를 벗어나
綠水靑山任去來 / 녹수청산 자유롭게 오고 갈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