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의 둥근 언덕 莎草地(岡)의 정체
조선왕릉의 둥근 언덕 莎草地(岡)의 정체
모성사 감사 류지세
조선왕릉만이 자랑하는 자연스럽게 생긴 언덕(岡) 사초지(莎草地)이다.
조선왕릉은 생기(生氣)를 갈무리 조절하는 풍수시스템이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고 했다. 자연이 빚어낸 신비한 언덕 사초지(莎草地)가 있어 조선왕릉에서 생기가 더욱 발랄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조선왕릉을 하나의 거대한 컴퓨터로 본다면 사초지는 풍수 시스템에서 핵심 부품인 하드디스크다. 주산에서 지맥선 맥세(脈勢)를 타고 내려온 기(氣 Energe)는 봉분 뒤쪽에 있는 잉(孕)이라는 입구를 거처 사초지에 들어가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된다. 사초지는 좋은 흙으로만 이루어진 언덕이라고 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중국의 사신이 태조의 건원릉 사초지를 보고 감탄한 기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기보(祁保) 등이 회암사(檜巖寺)로부터 오다가 역로에서 건원릉(健元陵)을 구경하고 돌아오니 세자가 동교(東郊)에 나아가 영접하였다. 기보 등이 능침(陵寢)의 산세(山勢)를 보고 탄미(歎美)하였다.
“어찌 이와 같은 천작(天作)의 땅이 있는가? 반드시 〈인위적으로〉 만든 산일 것이다.”
조선왕릉은 모두 자연의 언덕 사초지 위에 올라타고 있다. 땅 기운 가운데서 가장 좋은 기운이 생기(生氣)다. 사람이 죽어 묻히면 피와 살은 빨리 썩어져야 한다. 뼈만 남아 그 뼈로 생기를 받게 된다. 흙이 좋아야 한다. 지기가 장한 명당 터는 고운 흙이 나온다. 명당에는 혈의 흙(穴土)이 있다.
흙도 아니고 돌도 아니라고 해서 비석비토(非石非土)이다. 그런 혈토가 나오는 곳은 명당 중에 명당이다. 혈토는 눈으로 보면 단단해 보인다. 조각을 내어 손으로 비벼 보면 밀가루처럼 곱게 부서진다. 부드러운 흙으로 떡고물 같은 촉감이 있다. 색깔도 청.적.황.백.흑 등 오방색이 찬란하다. 또 기름을 뿌린 것 같이 흙의 단면에서 윤기가 난다. 그런 흙으로 찬 곳이 바로 명당이다. 바로 흙은 생기의 몸이라고 한다. 좋은 흙이 있는 곳에 반드시 생기가 있기 마련이다. 흙으로 생긴 사초지는 생기의 몸으로 생기를 갈무리하는 탱크라 할 수 있다. 생기가 치고 올라오는 그 중심 지점을 혈(穴)이라고 한다. 그 혈은 사초지 중심부에서 생기의 작동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왕릉의 능침은 바로 그 생기의 나들목 혈 위에 걸려 있어야만 생기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다. 생기를 받는다는 것을 풍수에서는 득생기(得生氣)라 하지 않는다.
풍수에서는 승생기(乘生氣)라고 말하고 있다. 음택에서 시신은 생기 위에 타(乘)야 한다. 생기 발생 지점인 혈 위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인 좌혈(坐穴)과도 통한다. 좌혈은 풍수에서 생기의 요충지(Hub)로 핵심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초지만 있다고 해서 명당은 아니다. 곡장 뒤쪽에 있는 불룩 솟아오른 작은 언덕 잉(孕)으로부터 제대로 지원받아야만 사초지는 비로소 명당의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초지가 생기를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생기 저장탱크 기능을 원할하게 하려면 생기의 공급을 뒷받침해주는 잉(孕)이라는 작은 언덕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초지에는 반드시 생기를 원활하게 밀어 넣어주는 공급 장치가 있어야 한다.
왕릉 봉분 곡장 뒤쪽에 볼록하게 솟아오른 작은 언덕 잉(孕)이 바로 생기 공급을 촉진하는 하나의 '악세리이다'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 작은 언덕 잉(孕)은 맥세를 타고 내려온 생기를 사초지로 원활하게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잉을 통해 사초지로 들어간 생기는 봉분을 감싸고 있는 곡장(曲墻)의 보호를 받는다. 곡장은 사초지의 좌청룡 우백호로 봉분의 삼면을 감싼다. 사초지의 생기는 이중 삼중의 경호로 원활하게 저장 조절될 수 있는 것이다. 배부른 모양의 잉(孕)은 강(岡)과 함께 조선왕릉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독특한 묘제라고 할 수 있다. 동구릉을 지나 망우리 고개 주변에 있는 과수원에 잉(孕) 모양의 언덕들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강이 있다고 해서 그곳이 꼭 명당이라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강과 이어진 자리에 잉이 있어야만 그곳이 명당 반열에 든다는 것이다. 조선의 왕릉을 택지할 때 강(岡)과 잉(孕)이 늘 함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죽음을 놓고 "돌아가셨다"고 말한다. 혼(魂)과 백(魄)이 서로 분리된 현상을 사람의 죽음으로 설명하는 것과도 같다. 혼은 정신이다. 혼은 양(陽)으로 하늘로 돌아간다. 백은 음(陰)으로 땅으로 돌아간다. "혼과 백이 하늘과 땅으로 각각 돌아갔다"고 해서 이를 인간의 죽음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명당에 자리한 시신은 생기를 받아 살은 썩고 뼈만 남게 된다. 여기서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라는 말이 유래됐다고 한다. '뼈대 있는 명당'에 묻힌 뼈는 오래 동안 보존되면서 명혈 기운까지 받는다. 이때 뼈 속에 저장된 기운이 후손의 뼈로 전달된다고 믿었다. 이른바 명당발복(明堂發福)이 좋은 흙이 갖고 있는 생기(生氣)로 가능하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명당택지를 하는 데는 자연이 빚은 작은 언덕 강(岡)을 잉(孕)과 함께 필수로 여겼다. 강과 잉은 모두 자연스럽게 조성된 언덕으로 기가 왕성한 좋은 흙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생기(生氣)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 물을 만나면 멈춘다고 했다. "기(氣)는 수영을 못한다"는 약점 때문에 생기는 금천 앞에서 멈추게 된 것이다. 금천으로 잘 갈무리된 생기는 또 바람을 맞으면 여지없이 흩어진다. 풍수에서 이를 '풍비박산(風飛雹散)'이라고 한다. 바람 풍(風) 날비(飛) 우박 박(雹) 흩을 산(散) 제대로 표현한 것 같다. 여기에 따지(地)를 바꿔 넣어 풍지박산으로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생기가 풍지박산 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바람을 갈무리하는 장풍(藏風)이 필요했다.
산줄기가 생기를 감싸주는 것이다. 물도 생기의 유출을 막아준다. 이를 풍수라고 한다. 풍수는 명당택지의 선결-필수요건으로 여겼다. 바로 좌청룡 우백호로 상징하는 산세가 따라다녔다. 왕릉에서는 좋은 강과 잉을 최우선으로 하여 명당 택지를 하였다.
강과 잉이 아주 출중하면 좌청룡과 우백호쯤은 무시하였다. 조선의 왕릉은 신이 빚어냈다고 한 천연의 언덕 사초지 위에 있는 세계 유일의 묘제다. 유교의 본고장 중국에도 없고 일본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신비한 왕릉이다. 그 자연의 언덕 사초지는 작은 언덕 잉(孕)과 황금의 콤비를 이뤄 생기를 갈무리-조절하는 탁월한 시스템을 기차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이 명당자리라 볼 수 있는 경기도 시흥시 능곡동 산 32(光海君의 丈人인 文陽府院君 柳自新과 妻祖父 工曹判書 柳潛 등 3대의 묘소)는 조선왕조 제5대 문종의 비 현덕왕후의 장지로 정하려다 조금 협소하다는 조정의 결정으로 다른 곳으로 정하였다. 이는 지난 2000년 시흥시 지방유적 제4호로 지정 되었다. 그러나 2020년 문화재의 참뜻을 이해 못하는 일부 몰지각한 종원과 시흥시 소관부서의 관리 소홀로 인하여 莎草地를 뭉개버리고 樹木으로 가리여 隱蔽 탁 트인 지방유적 제4호를 답답하게 하여놓은 것을 빠른 시일 내에 원상 복구하여 놓도록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참고 :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 16권, 태종 8년 10월 6일 경진 2번째기사 / 기보 등이 회암사에서 돌아오면서 건원릉을 구경하고 능침의 산세를 탄미하다. 풍수지리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