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2025. 5. 22. 12:00

봄 미나리

박성우


내 사는 집 아래에는 작은 방죽이 하나 있다

예전엔 다랑논이었으나 이제는
질척대는 흙이나 담고 있는 방죽,
한동안은 이장님이 가물치를 키우기도 했다

가시덤불이 우거져서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방죽,
사람 발길이 아주 멀어지자
방죽은 미나리를 키우기 시작했지만
가시덤불이 어지간히 우거져서
누구도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루는 텃밭 모종을 하다가
윗집 할매가 가시덤불 틈으로
들어가다 돌아가는 걸 보고는
처마 밑에 걸어두었던 낫과 톱을 챙겼다

처음엔 손등만 긁혔으나 점차
팔목과 목덜미며 얼굴까지 가시에 긁혔다
낫으로 덤불을 내리치다가 검지를 찍기도 했다

그래, 끝장을 보자
가시덤불이 가고 봄밤이 왔다

두어날 뒤 점심 무렵,
밥상 차려 한숟갈 뜨려는데
윗집 너디 할매가 왔다
입에 맞을랑가 모르겄네 잉, 할매 손에는
미나리 무침 한 대접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