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2025. 3. 21. 20:45

슬픈 농담

복효근

   해놓은 밥이 없어 라면 끓여 점심 때우자 했다 라면 이름이 나가사키 짬뽕이었다 나가사키 원폭이 ​생각났으나 곧 잊었다 여보 계란 넣을까 묻는 아내에게 짬뽕에 무슨 계란이냐고 대꾸하니 아내는 우리 연봉에 계란 하나쯤은 넣어 먹어도 되잖우 농담한다 먹다 보니 터지지 않은 채 반숙된 계란이 두 개다 넣지 말랬더니 두 개나 넣었네 하니 아내는 나 혼자 ​먹을 수 있나 ​우리 세대주도 하나 드셔야지 한다 세대주였던 아버지는 나가사키 원폭 때 규슈 탄광에 노무자로 있었다 술에 취하면 그 시절 왜정 때 나는 쌀이 ​없어 배곯기를 밥 먹듯 ​했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그러면 나는 속으로 뇌까렸다 쌀 없으면 라면 끓여 먹지 라면은 생겨나지도 않은 시절이었고 쌀도 돈도 그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내가 학교 때 라면 하나 사 먹을 돈이 ​없었던 것도 그 탓이었다는 것을 아주 뒷날 알았다 ​원폭이 규슈가 아닌 나가사키에 떨어진 것을 위안으로 ​삼고 ​살아야 했을까 ​라면 하나 끓여 먹는데 불어 터진 ​가족사가 ​농담처럼 ​스쳐 간다 국물은 희멀건데 되게 맵다 ​눈물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