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2025. 2. 11. 18:10

아구*

정일근

선생이 나를 아구라 불렀을 때
나는 사춘기였다

여드름 돋은 얼굴이 터져버릴 듯 화끈거렸고
나는 그를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진해아구찜 집 아들인 내가 보인 적의는
선생의 호명에 침묵하는 일뿐이었다

남편 잃은 어머니에게 아구는 생의 동반자였고
나에게는 달아나고 싶은 부끄러움이었다, 그때

제 뱃속 가득 먹이를 담고 잡혀온 아구는
어머니의 칼질에 토막이 나버렸지만
밤이면 내 꿈속으로 살아와
나는 한 마리 어린 생선이 되어
아구의 핏빛 뱃속에 갇혀 파닥거렸다

진해여중 그 계집아이도 나를 아구라 부를까 두려워
세상의 모든 아구와 함께
컴컴한 심해로 가라앉아버리고 싶은
가난하고 막막한 사춘기였다

* 바다 물고기인 '아귀'의 경상도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