戱詩(희시) · 吾與吾君(오여오군)
세상사는이야기
제가 어제 소개한 자작시를 위한 이바구 한 자락...
戱詩(희시) · 吾與吾君(오여오군)
太憲(태헌)
吾立吾君前(오립오군전)
君先落冷淚(군선락냉루)
吾終盡淚後(오종진루후)
君復垂餘淚(군부수여루)
희시 · 나와 그대
내가 그대 앞에 서면
그대가 먼저 차가운 눈물 떨구고
내가 마침내 눈물 다 흘린 후에
그대는 다시 남은 눈물 드리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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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가 소개했던 이 자작 희시를 밴드나 톡 등에서 읽어본 숫자가 학생들을 포함해 얼추 200명은 될 듯하였는데, 가장 근사치의 대답이 ‘샤워기’여서 이 시를 고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두고 제법 고민을 했더랬습니다.
200여 명 가운데 정답자가 한 명도 없다면(알고도 말하지 않은 분 제외 ^^) 출제자(?)의 잘못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시간에 뜻밖의 친구로부터 정답을 듣고 나서 저의 고민이 일순간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 전말은 이러합니다.
밤 11시가 다 된 시각에, 전화를 자주 하지는 않는 친구 하나가 느닷없이 전화를 해서는 “강박사, 아까 그거 정답 혹시 소변기 아니우?”라고 하였습니다.
혀가 꼬부라진 품새로 보아 소주 2병은 족히 마신 듯한 그 친구에게 왜 그렇게 생각했냐고 물었더니, “좀 전에 지하철역 화장실에 소변을 보러갔는데 내가 자리 잡고 서기도 전에 물이 좌르르 쏟아지더라구. 볼일을 다 보고 나서 한걸음 물러섰더니 물이 또 좌르르 쏟아지대. 이걸 강박사가 눈물로 얘기한 것이 아니우?”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취중에 그 친구가 느낀 것이 어제 아침에 제가 느꼈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가 다소 어렵기는 해도 이렇게 정답을 맞춘 자가 있으니 시는 고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ㅎㅎㅎ
제 졸작의 “그대”를 실제의 ‘어떤 사람’으로 생각한 분이 계시다면 손 들고 반성 좀 하셔야 할 듯합니다. 왜냐?
실제 사람이라면 첫째로 “희시”라는 제목이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눈물을 질질 짜는 이야기의 제목을 웃기는 희시라고라?
다음으로 “냉루(冷淚)[차가운 눈물]”에 주목해야 했습니다.
사람의 눈물은 뜨거운 것이 정상인데 식은 눈물을 떨군다고 했으니 사람의 일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했습니다.
참고로 김삿갓이 쌓인 눈 내지 고드름이 녹아 떨어지는 물을 ‘눈물’에 비유한 적도 있지요. ^^
어쨌거나 저는 (남성용) 자동 소변기에서 1차로 흐르는 물을 ‘차가운 눈물’에, 2차로 흐르는 물을 ‘남은 눈물’에, (내가) 소변을 다 본 후를 ‘눈물 다 흘린 후’로 묘사하였는데, 묘사가 너무 비약이었다고 한다면 미안하게 생각하며 반성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종의 변형 영물시[물건을 읊은 시]로 간주할 수 있는 졸시의 정답을 맞힌 그 친구에게 열흘 이내에 술 한잔쏘겠노라고 장담을 했던 어젯밤 일이 전혀 후회스럽지 않은 것을 보면 저도 술이 많이 고프기는 한가 봅니다. 구시렁구시렁~~~
웃자고 태헌이 몇 글자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