漢詩와 現代詩(姜聲尉 博士 제공)

새소리 값을 주러 갔다

감사공 2024. 2. 19. 18:24

새소리 값을 주러 갔다

유종인

​아파트 화단 한켠에 누가 자루를 내다놨다
얼룩과 곰팡이가 조금 서렸어도
묵은 쌀자루를 보니
산새에게 진 외상이 떠올랐다

​겨우내 정발산 텃새들이 내게 들려주길
된바람에 실어 혹은 초조한 겨울 볕에 내놓은
직박구리 오목눈이 곤줄박이 까마귀 딱따구리 동고비……
낯익은 까치는 말수가 줄었어도
한 귀로는 까마귀 소리 높이 듣고 한 귀로는 오목눈이 소리를 낮춰 들었으니
눈과 얼음을 헤쳐 얻은 모이들로
모래주머니의 모래까지 삭혀 얼러낸 힘의 소리라 생각하니
나는 소리의 빚두루미가 되고 말았으니

​아니, 아니 갈 수가 없는 거라
나는 묵은 쌀자루를 어깨에 둘러맸다
저녁이 가까웠으나 저녁에 배고픈 소리를 모른 척하면
밤새 노루잠이 찾아들 거라 생각하니
나는 마른 가지에 얼굴을 긁히며 숲에 들어
잔설에 찍힌 내 눈발자국에 쌀자루를 풀었다
내 발자국 깊은 데마다 쌀을 풀었으나
자루는 이내 동이 나 이 한 끼의 생색이 더 가난한데
저녁 바람에 나는 구멍 난 마대 자루처럼 펄럭였다

​갚지도 못할 새소리에 빚을 떠안았으니
나는 이제 봄을 당기는 시나 지어야겠다
솔바람소리에 방귀나 뀌는
두동진 시나 우물거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