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2024. 1. 21. 16:41

설국

곽효환


사흘을 내리는 눈,
하늘로 치솟은 전나무 숲 하얗게 물들다
늙은 산사는 푸르게 혹은 붉게 물들었던 기억을 놓고
산문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지우다
앙상한 나뭇가지 끝에 걸린 겨울바람
윙윙ㅡ 돌아 시리게 명치끝을 저미어오다
먹먹하다

멀리 인적 드문 간이역 숨죽여 맞는
목덜미까지 차오르는 눈 덮인 어둠
푸르고 흰 바람의 그림자
숲의 나라로 천천히 들어간다
이 밤 다시 눈과 나무들 뒤엉켜 몸서리쳐오리니
한 사흘 더 눈 내리면
그리움마저 몸살 나겠다

밤의 바닥까지 하얘지겠다*

*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 도입부 일부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