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2023. 5. 26. 19:36

어느 날 저녁

이상국


마트에서 돌아오는데
간지럼 혹은 무슨 즐거움 같은 게
나를 슬쩍 건드리고 지나간다
비닐봉지에 든 맥주였을까
저만치 가는 여자의 단발머리일까
하여튼 집으로 돌아오는데
수줍은 듯한 어둠도 그랬지만
서늘한 가로등도 나를 아는 것 같았다
이런 적이 별로 없었다
나는 늘 저녁의 골목을
집 나갔다 오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이고 돌아오고는 했는데
오늘은 달랐다
차오르는 어둠에 아무렇게나 몸을 적신 나를
무슨 희망 같은 게
물고기처럼 툭 치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그때 골목길에는 나밖에 없었고
소년처럼 반바지를 입은데다
비닐봉지를 든 나를 그렇게 건드리고 간 것은
아무래도 나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