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공 2023. 5. 11. 22:53

치마

최재경

학교 앞 문방구 집 딸 미영이는 내 친구다
머리를 양 갈래로 따고 이쁜 치마를 입고 오면
나는 달려가 툭하면 치마를 훌러덩 걷어 올렸다
미영이는 눈을 가리고 울었다
도망치다 몰래 쳐다보면 참말로 운 적은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께도 부모님께도 일러바친 적도 없었다
가끔 나를 때리거나 꼬집었어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어느 날은,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연필도 주고 크레용도 몰래 주었다
내가 아파서 결석을 하면, 먼 길 찾아왔다가 그냥 돌아간 적도 있었다
아파 누워 있어도 미영이 치마만 생각났다
다른 애들은 감히 미영이 치마를 걷어붙일 생각을 못했다
쓰봉을 입고 오는 날은 나는 심심했다, 그러면
일부러 생글거리며 내 곁을 자꾸 왔다 갔다 지나다녔다

살랑살랑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가끔 만나는 초등학교 동창회 때도
할머니 미영이는 치마를 입고 나온다
또 걷어붙일까 봐
치마를 꼭 잡고 내 곁으로 온다